리뷰 12

<붉은 꽃 이야기> 작가 한강의 따뜻한 그림소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여느 사람들처럼 나 또한 작가 한강의 작품을 톺아보길 원했지만,내게 그의 작품들은 무겁고 아파서 재독할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그래도 그의 수상을 축하하고 기념하고 싶은 독자로서의 응원이랄까, 의무랄까, 기어이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읽어도 좋을, 어쩌면 그럴 때 더 좋을 짧은 소설을 찾았다. 열림원 / 초판1쇄 2003 / 지은이 한강 그린이 우승우열림원에서 나오는 '시설 시리즈(시처럼 깊고 산뜻한 그림소설)'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소녀 선이가 일곱살, 남동생 윤이가 네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오빠들과 함께 법당에서 열리는 연등회에 가서 붉은 꽃과 닮은 수많은 연등을 보고 온다. 그해, 윤이 죽는다. 가족은 살아간다. 청소년이 된 선, 절에 들어가겠다 어머니께 말한다. ..

리뷰 2025.01.04

연말에 본 작품들

의도하진 않았으나 이것저것 봤고, 이것저것 보느라 내 글을 목표치만큼 못 썼고, 그것때문에 자책하느니 인풋의 시기였다고 재빨리 합리화한 후 짧게 기록한다! 1. 시즌1~4 + 3과 4 사이 유령신부까지 몇 년만에 재탕하니 처음 본 것 같고 여전히 재밌다.셜록의 '죽음쇼'의 전말을 끝까지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서 여러 시뮬레이션을 여러 명의 입을 통해 보여준 건다시 봐도 재치 있고 영리하다. 도대체 어떤 트릭을 쓴 건데? 라는 질문은 사실상 셜록의 아이덴티티인데,유일하게 트릭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다 보여줬다. 무책임하기도 한 거지. 셜록의 대사를 통해 "뭘 그렇게 다 트집을 잡아" "니넨 우리가 뭘 보여줘도 시시하다고 욕할 거잖아"해버리는 제작자들의 짜증과 투정(?)을 십분 이해하기에... 괜찮다. 왓슨이..

리뷰 2024.12.30

너는 나의 봄(2021, tvn, 16부작)

너무나 놀랍게도 1롤인 여주 강다정은 주인공의 아크를 갖고 있지 않다!강다정의 정체성은 '똥차 자석'으로 제시되면서 극이 시작됐고, 2롤 남주 주영도와 아름다운 연애를 유지하면서 극이 종결됐는데,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은 외부로부터 왔다.강다정이 현재 '고여 있는' 상태에서 자기 의지로 '변화'한 순간은, 주도영에게 어린 시절의 아팠던 기억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는데, 느닷없이 터뜨린 울음과 종결어미 없이 끊어진 짧은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내 목에서 칼을 꺼냈다"라고 비장한 변화처럼 일컫는 순간이기에는 설명으로서도 감정으로서도 부족했다.썸남의 자살, 그가 살인자였다는 것, 그의 쌍둥이의 등장 등은 강다정의 의지와 어떠한 관련 없이 외부세계에서 뛰어든 것이었고 강다..

리뷰 2024.12.30

웨이브 종영예정작 일드 <도쿄제면소> 6부작

12월까지만 걸려 있는 작품 중에 가장 부담없이 볼 수 있어서 얼른 봤다.20분×6부작.직장 휴먼 성장물워낙 러닝타임이 짧다 보니 스토리보다 플롯만 있다.좋은 의미다. 저예산으로 이야기의 원형으로만 의미 있는 주제의식을 전달했다.여기에 주인공들 개인 서사, 빌런, 멜로 붙이면 30분x8부작까진 됐겠지만 지금의 이 컴팩트한 느낌은 못 줬을 거다.도쿄제면소의 원래 취지, 값싸고 빠르게 한 끼+새로운 점장이 추구하는 고객만족서비스가 주는'더 나은 일상'을 위한 감동, 기분좋음 한 스푼딱 줄 건 다 줬다.새 점장이 등장하면서 갈등과 동시에 주제를 던지고"더 나은 일상을 고객에게 선사하겠다"5회에 그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가진 알바 반장이동의하면서 메시지가 완성된다.소박하고 진심어린 주제다. 그 더 나은 일상은..

리뷰 2024.12.26

<1승> 행복한 영화가 최고야!

12.4. 롯데시네마맨뒤 중앙에 혼자 앉아 한 관을 다 차지하고 보자니, 관람 자체의 만족도가 최고치여서 영화 만족도까지 덩달아 올라간 감이 없잖아 있으나ㅋㅋ깔끔하고 행복한 엔딩, 그 과감성이 정말 훌륭했던 건 확실하다.명백한 대중영화임에도 엔딩의 여운이나 메시지를 위해 절정 이후의 서사를 담백한 척 때로는 비장한 척 늘어놓는 영화들에 지쳐있었나 보다.관객에게 주기로 약속한 바를 정확하게 지키고 돌아서는 상업영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캐릭터의 설계가 좀 더 촘촘했으면 완성도가 훌쩍 올랐을 것이다. 배우 자체의 아우라와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주인공들은 정말이지 맥없고 핍진성 헐거운 인물들로 재미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워낙 캐릭터들이 전부 다 약해서, 중반까지는 으로 월클이 된 송강호 배우가 직후(1승은 2..

리뷰 2024.12.04

휴머니즘 소설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하라다 히카 /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2022.11 초판 서양에 의 프레드릭 배크만이 있다면, 동양에는 하라다 히카가 있달까. 짐짓 차가운 설정과 배경으로 시작하지만 끝내 뭉클해진다.이 또한 제목이나 목차(1장 절도/ 2장 지폐위조/ 3장 불법사채/ 4장 사기/ 5장 유괴/ 최종장 살인)의 인상과 달리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함께 살던 절친 도모가 사망한 뒤, 주인공 기리코는 심리적인 고립, 경제적인 궁핍, 사회적 소외에 맞닥뜨린다.그녀가 찾아낸 방법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면서 교도소에 들어갈 방법이 뭘까.그걸 찾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정하고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사람들을 만난다.그리고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생긴..

리뷰 2024.11.30

글래디에이터 II (2024) 무엇이 문제인가

줄거리 마르커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16년.로마는 고통받는 시민은 외면하고 끝없이 대륙들을 정복 중이다.아프리카의 누미디아도 침략받고 싸우지만 결국 함락된다.누미디아 군대를 이끄는 하노는 이때 아내를 잃고 포획되어 로마로 가게 된다.노예상인 마크리누스에게 팔려 검투사로 이름을 날리고, 마크리누스와 거래한다.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하는 대신 누미디아를 침략하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카시우스의 목을 원하는 하노.그 과정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딸 루실라는 과거 코모두스가 죽은 뒤 제 아들 루시우스가 권력욕에 찬 야망가들에 의해 죽을 것을 염려해 루시우스를 피신시켰고, 지금의 하노가 바로 루시우스임을 알게 된다.하노는 이를 부정하며 저를 버린 어머니 루실라를 매몰차게 내친다.하지만 마크리누스의 공작으로 아카..

리뷰 2024.11.24

넷플릭스 <내 이웃의 비밀> 스포0

-의 엠씨홀이 EP로 참여하면서 주인공.그는 왜 이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까?사실상 덱스터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자애로운 아버지, 다정한 남편, 동시에 그들을 잃은 비애,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근친 관계, 성실한 직장인, 이중생활하는 양가감정, 액션, 스릴러, 로맨스, 서스펜스.... 시즌이 워낙 쌓이면서 심지어 잘못된 변화까지도 보여줬다.그럼에도 시리즈는 끝났고 그는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무브온' 해야 했을 것이다. 왜 이 드라마였을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만들어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다, 라고 판단했을 지점을 찾기가 쉽진 않다. 사건에 휘말리고 내적 갈등을 통해 성장, 변화하는 캐릭터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주인공 톰 딜레이니는 저마다 진실과 마주해 극렬한..

리뷰 2024.11.23

넷플릭스 휴먼코미디 미드 <스파이가 된 남자>

넷플릭스 8부작의 테드 댄슨의 휴먼코미디. 설정 찰스 뉴엔다이크는 은퇴한 건축학과 교수로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다.여유롭지만 무료한 일상. 하나뿐인 딸 에밀리에게 (자기 눈엔 특별하지만) 시답잖은 신문기사를 오려서 보내는 정도가 유의미한 활동이다. 요즘 누가 종이신문을 보며 와중에 스크랩까지 한단 말인가... 에밀리는 남편과 십대 아들 셋을 키우는 바쁜 와중, 이런 아버지가 걱정스럽다.치매를 오래 앓다 돌아가신 엄마가 부녀 사이의 접착제 역할이었는데, 이젠 엄마가 안 계시니 더 어색하고 소원하다. 둘 사이에는 무언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기폭제  찰스에게 일이든 취미든 가져보라고 권유하는 에밀리.찰스는 지금 삶에 만족(한다고 생각)한다.또 스크랩하려고  종이신문을 오리다, 탐정 보조를 찾는 공고를 본다..

리뷰 2024.11.22

2024 하반기 독서 기록 정리

올 하반기(7-11월)는 의도적으로 관심 있던 분야들을 차례차례 몰아서 읽었다. 특별히 좋았던 작품들만 기록해둔다.  * 소설 & 시 -한무숙 작가의 작품에 집중했고, 중단편은 모두 읽었다. 한무숙문학관 홈페이지에 pdf 파일로 공개돼 있다.그중 은 전체 필사를 했는데, 특히 는 삶에서 중요한 것을 상실한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만한 작품이다.문학이란 결국 고통 받는 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때로는 더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을 기어이 마주보게 해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훌륭한 소설이다.  -클레이 키건  클레이 키건의 최고 작품은 아닐 수 있지만 이 작가 특유의 소박하고 진솔한 묘사와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잘 녹아 있다. 인류애를 잃어갈 때, 인간이 아주 진저리날 때..

리뷰 202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