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글래디에이터 II (2024) 무엇이 문제인가

준잠 2024. 11. 24. 14:28

줄거리

 

마르커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16년.

로마는 고통받는 시민은 외면하고 끝없이 대륙들을 정복 중이다.

아프리카의 누미디아도 침략받고 싸우지만 결국 함락된다.

누미디아 군대를 이끄는 하노는 이때 아내를 잃고 포획되어 로마로 가게 된다.

노예상인 마크리누스에게 팔려 검투사로 이름을 날리고, 마크리누스와 거래한다.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하는 대신 누미디아를 침략하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카시우스의 목을 원하는 하노.

그 과정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딸 루실라는 과거 코모두스가 죽은 뒤 제 아들 루시우스가 권력욕에 찬 야망가들에 의해 죽을 것을 염려해 루시우스를 피신시켰고, 지금의 하노가 바로 루시우스임을 알게 된다.

하노는 이를 부정하며 저를 버린 어머니 루실라를 매몰차게 내친다.

하지만 마크리누스의 공작으로 아카시우스와 콜로세움에서 대결을 벌이게 됐을 때 결국 제 어머니의 남편이자 로마의 영웅인 아카시우스를 살려주고, 루실라에 대한 마음도 돌이킨다.

그 사이, 마크리누스는 어리석은 쌍둥이 왕들을 이간질해 왕 중 하나인 게타를 죽이고 카라칼라의 총애를 받아 집정관으로 임명되어 로마를 손에 쥔다.

권력에 방해가 되는 루실라를 죽이고  루시우스도 죽이려 하나 루시우스는 탈출한다.

결국 뒤쫓아온 마크리누스를 죽이고 루시우시는 로마군들에게 제 할아버지인 아우렐리우스의 비전이었던 '로마의 꿈'을 웅변하고 제 정체성, 로마의 왕자임을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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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America, Again! 캠페인처럼 보인다. 어처구니없게도.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망가졌지만 우린 원래 위대한 나라다. 

어쩌라구요. 소리가 나온다. 노장 리들리 스콧이 영화가 아니라 국가의 각성을 위해 바치는 알레고리극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 하노가 마크리누스에게 아카시우스의 목을 원한다(주인공의 목표, 욕망)고 한 다음 장면이

아카시우스가 루실라에게 로마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신이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전쟁, 살육에 대한 회한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여기서부터 조졌다. 주인공의 욕망이 잘못됐으며 헛된 일인 것이 자명한데 어느 관객이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응원하겠는가.  

 

- 막시무스는 사적복수뿐 아니라, 왕의 충신이었기 때문에 로마를 바로 세우겠다는(원로원의 복귀 등) 명분으로 코모두스를 살해하려는 목표가 지지받을 수 있었다. 하노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정치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로마를 떠났고 로마에 대한 증오를 표출한 초반에서 '로마의 꿈'에 사로잡힌 듯 설파하는 데까지 인물의 변화가 급작스럽다.

그가 할아버지가 가진 비전을 그대로 품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어야 했다.

 

-'주인공이 주인공답게' 달리는 플롯. 여러 경우의 수가 있겠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1. 누미디아에서부터의 씨앗.

하노는 로마를 욕하고 저주하는 아내의 말에 가슴아프다.

로마는 이런 나라가 아니다. 지금은 어리석은 위정자들 때문에 망가졌지만, 곧 그 위대한 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극적이지만 분명하게 변호한다. 관객의 그의 과거(루시우스라는 정체)를 아직 모른다. 

그래서 그런 그의 항변이 의아하지만, 사연이 있겠거니 짐작한다.

아내가 묻는다. 그럼 로마가 우릴 침략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 

하노는 단박에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나의 나라, 내가 사랑하는 당신과 나의 삶의 터전은 이곳이다. 

누미디아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침략이 시작된다. 하노는 약속을 지킨다. 장렬히 싸우지만 아내를 잃는다. 

 

2. 마크리누스와의 거래 - 선명한 욕망 제시.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까야 하는 장군 아카시우스가 아니라, 로마를 달라고 한다.

로마의 군대를 달라고 했다가 장군을 원했는데, 그렇게 가지 말고 아예 로마를 달라고.

여기서 마크리누스와 명확한 동맹을 맺는다. 그가 원하는 것도 로마이기에.

마크리누스의 욕망을 더 빨리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는 하노를 이용해 권력을 쟁취할 야심으로,

하노는 마크리누스를 이용해 콜로세움에 입성한 뒤 왕을 죽이고 그때 자신의 정체를 밝혀 정당한 왕위를 계승할 계획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미디아의 백성들, 지금은 노예가 된 그들을 모두 다시 조국으로 보내주고,

다른 나라의 노예들도 풀어주고자 한다. 이제 의미없는 학살이 된 정복을 멈추고 로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3. 마크리누스와의 갈등.

검투사로서 승승장구하며 점점 더 로마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하노와 마크리누스.

그 과정에서 하노의 정체를 알게 된 루실라를 하노는 내치지만, 

마크리누스 또한 하노가 루시우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루시우스가 있는 한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없기에

루실라를 이용해 루시우스를 함정에 빠뜨리고 이제 루실라와 루시우스는 모두 위험해진다.

 

4. 루시우스의 선택.

루시우스는 결국  엄마 루실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만, 루실라가 빨랐다.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이제 아들 대신 죽음에 이른다.

마크리누스와 이 함정에 가담한 원로원의 일원과 대면하는 루시우스. 

근위대 등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피를 뒤집어쓴 루시우스는 그들에게 아우렐리우스의 비전을 설파한다.

이제 그는 완연한 왕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마크리누스는 루시우스 손에 처형당한다.

->용병의 태반이고 실정에는 힘이 없는 로마군을 대상으로 도대체 그들이 어쩔 수 없는 '로마의 꿈'을 웅변하는 것보다 위정자들과 맞닥뜨려 혼구멍내주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런 흐름이었다면 내가 조금 더 납득했을까?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영웅 대서사시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텔링이 뭐였을까.

대단한 각본가들과 리들리 스콧 감독이 모를 리 없는 이 공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금은 의문으로 남는다. 언젠간 내가 이 의아한 플롯팅의 비밀을 깨닫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