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7-11월)는 의도적으로 관심 있던 분야들을 차례차례 몰아서 읽었다.
특별히 좋았던 작품들만 기록해둔다.
* 소설 & 시
-한무숙 작가의 작품에 집중했고, 중단편은 모두 읽었다. 한무숙문학관 홈페이지에 pdf 파일로 공개돼 있다.
그중 <우리 사이 모든 것이> <생인손> <감정이 있는 심연>은 전체 필사를 했는데,
특히 <우리 사이 모든 것이>는 삶에서 중요한 것을 상실한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만한 작품이다.
문학이란 결국 고통 받는 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때로는 더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을 기어이 마주보게 해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훌륭한 소설이다.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이 키건의 최고 작품은 아닐 수 있지만 이 작가 특유의 소박하고 진솔한 묘사와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잘 녹아 있다. 인류애를 잃어갈 때, 인간이 아주 진저리날 때 한 번 더 읽고 싶다.
-닐 셔스터먼 <수확자>
좋은 소설이라곤 못한다. 허술한 점이 너무 많다. 특히 어떤 감정선은 인물 행동의 당위성을 부여하도록 너무나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어떤 관계성과 감정선은 인물들을 한순간에 소시오패스나 아예 다른 인물처럼 보일 정도로 터무니 없이 일관성 없고 투박하게 다룬다. 이 차이가 전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트릭은 아예 생략해버린다거나 미스터리와 떡밥을 던져놓고 제대로 회수하지 않는다거나 소설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동일한 상황을 다르게 서술하는 등 편집자 일 안 하고 뭐하냐,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이 방대한 분량에서 작가가 놓친 핍진성을 모두가 놓치고 이대로 출판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퀘스천 마크를 가지고 보게 만드는 힘이 있고 사건 위주 스토리의 장점이 잘 살아 있다. 개연성이 좀 뭉개져도 사건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그 결말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신동엽 시 전집
이 벽돌을 드디어 읽었다. 그중 <금강>을 전문 필사했고, 동학농민혁명 관련 독서로 넓혔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 나는 도무지... 이 젊은 시인의 젊음이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이 셀럽 시인의 행보가 왜 이렇게 거북한지 모르겠다. 문득문득 걸리는 시어의 깊이가 나를 감동시키면서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 동학
-녹두밭에 앉지 마라 : 1894, 동학 농민 운동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전봉준, 혁명의 기록 : 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 이이화 저술가의 필생의 역작이 아닌가 싶다.
동학을 개괄하는 데 가장 크게 도움받았다.
* 옹기 + 조각
손으로 실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늘 갈망하기 때문에 이 분야 책들은 꾸준히 읽고 있는데, 올해도 좋은 책들을 찾을 수 있었다.
-흙으로 빚는 자유 : 옹기장이 이현배 이야기
-(숨쉬는 도자기)옹기: 자연을 닮고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한눈에 보는 옹기 -> 한 권만 다시 읽는다면. 책 만듦새 자체가 좋다. 판형부터 재질과 사진 편집까지 공들여 만든 책은 독서를 즐겁게 한다.
-옹기민속박물관
-까다로운 대상 :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 미술비평도서가 아니라 일반교양서로 봐도 너무나 훌륭하다. 소장가치가 높다.
-어느 예술가의 잠꼬대 : 조각가 이일호의 미학 이야기 -> 한 노년의 예술가의 평생에 걸친 예술 철학 정수가 담겨 있다. 제목이 미스다. 아카데믹하게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은데 차라리 양장으로 고급스럽게 나와서 지적 허영을 건드려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오롯이 담긴 한 조각가의 철학과 삶이 뭉클하다.
-느낌의 미술관: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열네 번의 예술수업 -> 정말 양질의 수준 높은 내용인데 쉽게 풀어 써서 진입장벽이 낮다.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존대어를 꼬박꼬박 쓰는 안내서는 참을 수가 없다!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종이와 잉크를 더 쓰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부디 평어로!
-세계조각공원 :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다. 한국의 조각공원들도 세세하게 담겨 있다. 좋은 가이드북.
* 다큐멘터리
-세계, 인간 그리고 다큐멘터리 -> 전쟁터를 함께 누비는 기분이다. 한 챕터씩 꼭꼭 씹어먹어야 했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 가족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특별한 삶 -> 양영희 감독의 삶과 작품이 담백하게 담겨있다. 카페에서 눈물콧물 빼며 읽었고, 작품은 작품대로 보고 싶지, 그걸 만든 사람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아 하는데 이 책을 읽은 건 후회되지 않는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이 더 좋아졌다.
* 셀프헬프류
-프레임 -> 이건 사실상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학술적인 보고서에 가까운데, 사람들이 셀프헬프류 서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실질적으로 삶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훌륭한 책이다.
-원씽 -> 저자의 확신에 고무되지 않을 수 없다. 왜 고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12월에는 작법서와 대본집들을 읽을 계획이라 특별히 기록할 필요는 없어 이른 하반기 기록을 남긴다.
이외에 기록하진 않았어도 분명 나에게 가치 있었던 책들은 전체 결산 목록으로는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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