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넷플릭스 미드 <나이트 에이전트>(스포o)

준잠 2024. 11. 16. 20:33

 
미드, 10부작, 넷플릭스
<쉴드> 제작자 숀 라이언
동명의 원작소설
 
-영웅의 여정 플롯으로 짜였다.
정의로우나 결핍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게 부당한 자리에 놓여 있는 주인공.
운명의 부름(한 통의 전화)을 받음으로써 능력을 발휘하고 결핍을 해소할(아버지의 진실을 밝힐) 가능성을 향해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력자들을 잃기도 하고,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미션을 성공한다. 끝내 영웅의 면모를 스스로와 세상에 떳떳하게 알리고 진실을 획득해 결핍으로부터 성장한다.
 
-전형적인 젊은 백인 남성이 주인공인 것은 상업성을 위한 계산적인 캐스팅이었겠지만, 인종과 성별 분포를 고르게 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하게 보인다. 일단 미국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여성 대통령 캐릭터부터 선언하고 들어간다. 또한 아시아계 여성 캐릭터들이 두드러지는데, 주인공 피터 서덜랜드의 파트너이자 말하자면 사건의 콜래트럴 데미지 피해자인 로즈, 대통령 비서실장 퍼, 퍼의 비서가 모두 그렇다. 그럼에도 인종과 성별에 따른 스테레오 타이핑도 무시할 순 없다. 비밀경호국의 야망 있는 요원은 흑인 여성인데 자신이 경호하는 부통령의 딸과 지나친 감정 교류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살인을 즐기는 범죄자 커플이 히스패닉계라거나,  욕망을 위해 부패를 저지르는 고위급은 백인 남성들인 식이다. 하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반갑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과 인물들을 각자 배치하면서도 매끄럽게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원작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아마도 미국의 장르 소설들이 으레 그렇듯 각각 분리된 장으로 서술됐을 텐데, 이걸 드라마 대본으로 각색한 솜씨가 놀랍다. 하나의 원인과 사건으로 점차 좁혀들면서 서스펜스를 주기 보다는 시청자와 등장인물이 함께 진실에 가까워지는 몰입도를 선택했다. 밝혀져야 하는 진실이 사실상 단 하나이기 때문에 이 선택은 (어쩔 수 없으면서도) 매우 영리하다. 자칫 서스펜스를 주려다가는 후반부가 늘어졌을 것이다. 함께 경험하게 하는 쪽이 긴장감 유지에 유리했다.
 
-비서실장 퍼의 캐릭터가 가장 입체적이다. 이 캐릭터가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장르로 스핀오프가 만들어져도 좋을 정도다. 대통령에 대한 충심과 동시에 자신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과 교만이 집요하다. 자신의 욕망이 아닌 신념으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지만, 후반부 로즈가 책망하듯 그는 그의 생존과 영화를 위해 가담을 넘어서 범죄를 실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자신이 사랑하는 피조물(이라 믿는)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또한 기꺼이 제 인생을 건다. 
백발이 성성하고 안경쓴 작은 체구의 외모 묘사도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부가시켰다. 이 아시안계 여성 배우는 어떤 배우와의 투샷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주인공의 제1조력자로 등장한 퍼가 사실은 내막의 빌런이라는 것은 일찍 눈치챌 수 있게 플롯팅됐지만, 시청자가 "난 알고 있었지" 하며 으스댈 순 없게 아주 적절한 시기에 퍼의 행적이 밝혀진다. 이 타이밍이 작법의 교과서다. 따로 시간을 들여 분석해볼 가치가 있다. 제2조력자의 사망은 너무 얕게 파인 사망플래그였다. 분명 여기서 시청자의 감정 소요를 기대했을 텐데, 주인공이 너무 바빠 제대로 스케치하지 못하고 후에 그의 죽음을 기릴 때(요트 위 케빈)조차 로맨스 감정으로 전환되느라 제2조력자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진 못한 점은 아쉽다. 제3조력자의 존재가 제4, 5조력자를 만나는 데에 이르게 하고, 제5조력자가 사망하면서 제4조력자가 단독 감정선을 얻는 과정은 유려했다.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서사를 알차게 배치했다.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남자가 대통령의 죽음을 막으면서 부상을 입고, 치유 과정에서 진통제에 중독된다. 힘겨운 재활 후 일선에 복귀하나, 예전같으면 자신의 눈도 못 마주쳤을 어리고 야심있는 루키를 보스로 두고 어렵게 적응하기 시작한다. 루키에게 번번이 무시당하지만 결국 남자의 지혜와 연륜으로 루키의 존경심을 얻어낸다. 부상 때문에 멀어졌던 딸과 재회를 앞두고 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부통령의 딸을 지켜라)를 수행하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자체로 양산형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을 만한 스토리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 하나하나가 충분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강점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