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한 번 무너지면 와르르

준잠 2024. 11. 12. 21:01

일상의 루틴도 호르몬에겐 장사없다
생리 사흘 전, 운동과 식단, 심지어 일까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한심해서 누워 있는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일으키지 않는다
호르몬탓을 하지만 그렇다고 매달 그랬던 것은 아니라 내 선택인 것이다

먹던 시간에 먹지 않으면, 먹던 양보다 더 먹게 되고, 먹던 양보다 더 먹으면, 몸이 무거워서 하던 식후 운동을 덜하고, 운동을 덜하고 식사는 더했으니 이미 조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그러면 이렇게 된 바에야 더 먹기로 하는데 그럴 때 먹는 것은 꼭 치킨이나 과자처럼 돌이킬 수 없는 초가공식품이다 그러고나면 혈당스파이크로 졸음이 몰려오고 잠시 졸고 나면 진짜 하루가 날아간다
꾸역꾸역 일을 해보지만 뇌는 오늘 쉬는 날 아니었냐며 갑자기 집중을 요구하는 만행에 반항한다
이제 명백하게 밤이 되었고 걸으러 나가려고 오후에 입은 트레이닝바지를 벗고야 만다 이로써 내적 갈등이 종료된다 그래 조졌다
몇 번이고 다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 예컨대 아이스크림을 먹어버린다거나 하는

애써 담담한 척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활동을 떠올린다
깜빡이기 시작한 주방 전등을 갈았다
80쪽 정도만 남겨두고 드럽게 진도 안 나가던 자료조사용 책을 일단 다 읽었다 이제 필사할 준비는 끝났다
이 글을 남겨서 챌린지를 이어간다

프리랜서의 일상이란 너무나 허약해서 산들바람도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안부 전화 한 통화도 종전 선언마냥 들뜨게 만든다
이런저런 소릴 떠들지만 결국 매순간 내가 다잡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소리다
오늘은 다잡지 못한 하루를 보냈단 얘기다

종일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틈틈이 불안해하는
이 어리석은 하루를
내일은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조차
일상인 것이다
문득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어서 은밀하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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