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년 전 겨울

준잠 2024. 11. 21. 22:35

하루를 살았다,라는 안도가 아닌,
하루를 죽였다,라는 회의에 잠겨드는 시간
겨울은 해가 짧아 그 시간을 더 빨리 맞는다

일을 하기 싫다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하고 싶지 않은 불안이 
문득, 그야말로 문득 덮쳤다

지나가길 기다리기에는 초조하고
타파하기에는 방법을 모른 채
하루하루 죽어가고 하루하루 죽여간다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이성과
힘껏 절망하고 싶은 본능 사이
혹은
희망을 말하고 싶은 욕구와
힘껏 절망해야만 한다는 이성 사이

아무도 읽지 않고 읽을 수 없는 빈 공간에
따박따박 고통을 전시하는 짓을 이어간다
눈에는 눈으로, 피는 피로, 허무는 허무로
딱 그만큼만 되갚는 심정으로
허망함을 허망하게 전시한다

이해와 위안을 받기보다
내가 이해하고 내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인간은
이 은밀한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할 줄 몰라서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을 사랑하느라 나를 사랑할 여력이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하고 싶지 않은 불안이
문득, 그야말로 문득 덮쳤고
누군가들이 이미 써놓은 글을 읽으며 하루를 죽였다

22.12.06.

2년이 지나갔고 무엇이 달라졌고 어째서 여전한지를 생각한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읽은 하루의 끄트머리에서조차 만족 없이 감사하는 인간이라는 게 부끄럽고 죄스럽다
머리 조아려 사과하고 용서를 기다리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진정인 죄를 지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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