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불안의 관계
-인간은 일기장에도 거짓을 쓴다고 한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읽을 수도 있으므로.
그렇다면 일기장의 주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진실해질까?
쓰는 순간 쓴 내용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에 만약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면 익명이 보장될 때조차 진실을 쓰기 저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일기장엔 뭘 써야 하나?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진실만이 가치있을까?
-이곳에 며칠 동안 글을 쓰면서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일기장보다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스토리는 정말이지 아무도 읽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정보성 포스트로 꾸준히 데어터를 쌓아둔 블로그가 아닌 신생 블로그는 완전하게 고립되어 있다. 간간이 달리는 댓글들이 이 고립을 더욱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블로그를 사용하는 인간으로서 글을 읽는 행위나 공감, 소통하는 감정적 반응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댓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려 제 블로그 조회수를 올리고자 하는 목표로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분야 카테고리의 글을 읽고 싶어도 접근할 방법이 없다. 메인화면에서는 이미 인기를 얻은 글만 노출한다. 공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비공개가 되는 셈이다. 이 안전성이 티스토리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모순은 모순의 효과를 낳는다.
-기록용으로 글을 쓰든 업무용이 아닌 글'도' 씀으로써 일종의 자기통제를 하기 위해서든 오직 자기만을 위해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에겐 가장 안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블로깅을 커뮤니티처럼 확장시키길 원하는, 그러니까 서로의 포스트를 읽고 영향 받고 공감하고 그것을 기꺼이 전달하면서, 말하자면 교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이용자라면 블로그를 하지 않을 때보다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타의적인 외로움도 고단한데, 외로움을 자가발전한다? 누군가에겐 금세 블로깅을 그만두는 이유가 될 것이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외로움은 지금의 내가 혼자일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라는 예감을 일컫는다.
운 좋게도 어린 날에 이 예감이 찾아왔고 일찍이 외로웠다. 혼란과 슬픔은 심신이 성숙해지면서 때로는 옅어지고 때로는 깊어지며 다양하게 나를 공격했고, 나는 이제 .훌륭하지만 혹독한 스승 밑에서 오래도록 수련한 수제자처럼 그와의 대련에 익숙해졌다. 내 감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이자 예리하게 별러 품어둔 호신무기다. 나는 더 이상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수굿하게 받아들인다. 떼로는 패배해 괴로워하고 때로는 발판으로 삼아 창작물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기꺼이 삶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래확신이 몇 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카페트처럼 인생 밑바닥에 들러붙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지극히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진실이 카페트 위의 고풍스러운 안락의자처럼 버티고 있지만 카페트는 카페트인 것이고 그 존재는 여전히 그 자체로 기능하면서 가치가 있다.
에로스적인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삶을 둔탁하고 점성 있게 만들까? 그런 상태를 벗어나야 할까?
아직 답이 없고, 답은 찾지 않아도 된다. 그저 살아가면 되는 까닭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서 슬퍼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존재라서 불안해한다.
아무도 나를 에로스적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래확신이 나를 외롭게 한다면 그것은 통제 가능하면서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데 일조하지만, 내가 누구도 에로스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미성숙하고 독단적인 인간으로 점차 변모시켜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이 어느날 불현듯 고통이 될까봐 또한 불안하고야 마는 것이다.
-현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불안일까?
어쩌면 그렇다. 살아온 세월과 맞바꿔져야만 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지혜와 관용과 헌신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들, 오직 내가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을 수 있는 덕목들. 그것들이 있을 때 비로소 이만큼 살아온, 살아갈 세월이 유의미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지 못할 나는 기어이 불안해지고야 만다는 것이다.
성과가 없으면 과정을 돌이켜봐야 한다. 그 과정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으면 성과는 언제나 동일하다.
애석한 진실이다.